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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마스떼 네팔, 출장 기억의 단상들
    일상 2019. 6. 9. 23:59

    2019년, 나는 역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기력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지난날을 조금씩 잊어가며 작은 도전들로 일상을 메꾸고 있다. 작년의 나였으면 부담 가득한 해외 출장 제안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런 출장 제안을 아예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2019년의 나는 이 기회를 덥석 잡았다. 맞아 기회였어.

    회사에서 6년이지만 나의 직무는 컴퓨터 앞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었고 사무실 밖엘 나갈 일이 거의 없다. 또 우리 회사는 담당 부서가 아니고서는 해외 출장은 매우 드문 경우다. 10년 이상을 근속한 선배들도 해외 출장 경험은 손에 꼽는다. 그런 기회가 나에게 우연히 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의사결정권, 팀 내 인력 상황, 나의 의지와 상황 이 모든 것이 아주 시기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는 이렇게 감사하게도 7박 8일 네팔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나에게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네팔 출장 기억의 단상들을 사진과 함께 기록해보려 한다.

     잠깐! 그 전에 나의 다른 나마스떼 네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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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에서 내려다본 카투만두 거리. 알록달록 건물들 색이 예뻤다.

    직항으로 7시간 정도 달려온 네팔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처음으로 들이마신 공기는 습하고 더운 날씨 덕에 높은 고도를 달려와 싸늘했던 나의 손발을 금세 데워주었다.

    나의 기억에 남는 카트만두는 가끔 정신없이 달리는 차, 차선 경계 없이 차와 오토바이, 사람과 소들이 한데 섞여 움직이는 도로, 뿌옇게 쌓인 먼지와 매캐한 매연, 여기저기 쉬지 않고 울리는 경적소리, 그리고 그 사이 친절한 얼굴들. 카트만두는 정말 공기오염이 심각했고, 거리를 걷는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나도 여분으로 챙긴 마스크를 항시 달고 다녔다.

    카트만두 시내 도로

    네팔을 다녀왔다고 하면 카트만두, 포카라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며 오르는 하이킹, 다양한 불교 사원과 볼거리 가득한 시장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션을 수행하러 간 나는 카트만두에서 잠만 자고, 돌아오기 전날 기념품을 산 것이 전부이다.

    내가 카트만두에서 들른 곳이라고는 주로 관광객들이 찾는 식당 몇 곳과 훌륭한 카페에서 자료를 정리한 것 정도. 가까운 곳에 볼거리가 많은 재래시장과 사원이 있다고 했지만 검색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정 마지막 날 출발 직전까지 회의와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숙소가 있던 카트만두 타멜 지역

    하지만 나는 관광으로 가서 경험할 수 없는 값진 네팔의 모습을 한껏 담고 와서 업무와는 별개로 너무나 감사한 경험들을 하고 왔다. 내가 다녀온 지역은 네팔의 고르카와 닥신칼리. 우리의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다. 네팔 지진과 기후가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부들에게 관개수로를 설치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사업이다. 협동조합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고, 교육과 시설, 장비들을 지원하고 있다.

    아직 1차년도 사업이라 이것저것 모니터링하고 의논할 것들이 넘쳐났고 나는 그 사이에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누르고 인터뷰를 하며 실제 농민들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나의 미션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밀착하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 일정을 소화하며 미팅 차 만난 분이 나에게 네팔리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두고두고 기억하려 한다. 그 이름은 바로 '썬다'. Sunset, 석양이라는 뜻이다. 함께 간 동료의 이름은 일출, 나는 일몰이 되었다. 

    네팔 고속도로에서 들른 휴게소. 다양한 간식거리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쩌나와 짜이. 휴게소에서 먹은 간식.

    카레로 양념한 콩 간식 쩌나와 우유를 넣고 끓인 홍차 짜이. 휴게소에서 간편하게 즐긴 간식이다.
    쩌나에 칼칼한 고추와 생 양파를 버부려 먹는데, 콩을 정말 즐기지 않는 나는 이색 음식이라 생각하고 '한입만 먹어보자' 했는데 거의 바닥을 보이게 비워버렸다. 고추와 생 양파가 비릴 수 있는 콩 맛을 사악 잡아줬다.

    짜이는 우유를 넣은 것과 물로 우려낸 것이 있는데 두 가지 모두 짜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우유를 넣어 만든 짜이가 더 내 입맛에 좋았는데 가는 곳마다 배율이 달라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유와 설탕, 생강을 약간 넣어 따뜻하게 마시기 참 좋았다.

    직접 내려주시는 짜이. 물에 내린 짜이는 우유를 넣은 것과는 맛이 많이 다르다. 달달하니 좋은데 비스켓과 같이 아침밥(?)으로 먹는다.

    우리가 방문한 고르카 지역은 네팔의 북쪽, 히말라야산맥과 가까운 지역이다.
    네팔은 높은 산맥, 중간, 평지로 이뤄져 있는데 카트만두가 중간 정도 되고(하지만 그럼에도 지대가 꽤 높은 편) 고르카가 높은 축에 속하며 남쪽으로 내려가면 완전 평지가 펼쳐져 고르카와는 완전히 다른 자연경관이 펼쳐진다고 한다.

    고르카는 카트만두에서 차로 약 7시간을 달려야 나온다. 고속도로를 지나 산으로, 산으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달리는 차 안에서 엉덩이가 10cm 이상 들릴 정도로 덜컹거리는 돌길을 인내해야 다다를 수 있다.

    단어 그대로 '끝없이' 오르고 올라 도착한 고르카. 계단식 밭들이 새로운 장관을 이루지만 땅을 잡아줄 나무들이 배어져 산사태의 위험이 커진다고 한다.
    이 높은 곳에 벽돌을 하나하나 나르며 집을 지은 사람들. 경의를 표한다.

    정확한 고르카 지역의 해발 높이를 찾지는 못했지만 차로 이곳을 오르며 계속 '우리나라 지리산보다 높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이렇게 좁고 가파른 돌길을 차로 오를 수 있다니, 나는 정말 내려서 걸어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올라가야 하는 거리가 상당했고, 나 말고는 모두 여러 번 오르내린 길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이 안전벨트만 부여잡을 뿐이었다. 정말 바퀴 한번 잘못 굴렸다가는 황천길 직행인 높이.

    고르카 마을에서는 날씨가 좋을 때 저 멀리서 설산, 히말라야산맥이 보인다고 한다. 2박 3일 묶었던 이 곳에서 나는 정말 떠나는 마지막 날 딱 5분 그 설산의 흐릿한 자태를 겨우 보았다. 차 한잔 한 후 사진으로 남기려 뛰어내려오니 그새 자취를 감춘 설산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 아름답고 신비한 히말라야 산맥을 실제 본 후 나는 오를 수 있는 산을 보았다기보다는... 실존하지 않는 전설 속 무언가를 멀리서나마 접한 그런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저곳을 정말 오른단 말인가? 오를 생각을 한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등교하는 고르카 초등학생 아이들. 다들 7~9살 사이다. 

    고르카의 아이들은 저 산길을 걷고 걸어 30분이 걸리는 학교를 2시간씩 오간다. 걷다가 나비가 보이면 모여 앉아 웃고 떠들고, 또 걷다가 열매가 보이면 따먹으며 그렇게 어울려 논다. 운동화를 신고도 쩔쩔매는 그 길을 쪼리를 신고 나를 추월해 산길을 달린다.
    최근 네팔 지진 복구 작업과 함께 길에 아스팔트가 조금씩 깔리고는 있지만 아이들은 아직도 흙길을 따라 걷고있었다.

    비포장 도로를 걸어 학교가는 친구들. 오토바이 한대만 지나가도 주변이 온통 흙먼지로 뿌여치만  아이들은 전혀 개이치 않는다.

    카트만두에서와는 달리 고르카와 닥심칼리에서는 매끼를 로컬 푸드로 식사를 했다. 이름하여 '달밧타카리' 달과 카레 요리가 납작한 쟁반에 함께 나온다. 날아가는 쌀밥과 항상 빠지지 않는 콩으로 만든 스프 '달'은 평소 콩 골라 먹는 나에게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거의 모든 반찬에 카레를 넣어 조리한 음식들이 나온다. 

    네팔의 로컬 푸드 '달밧타카리'

    향신료, 야채볶음, 야채, 국물 요리가 나오는데 닭, 생선, 고기 등이 주로 스프 형식으로 나온다. 닭 요리는 꼭 우리나라 닭볶음탕에 카레 조금 넣은 맛이 난다. 낯선 음식들인데 카레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모두 입맛에 잘 맞았다. 현지 분들은 이 달을 밥에 뿌려 '손'으로 조물조물 비벼 뭉쳐드신다.(다행히 우리에게는 포크와 수저를 주셨다:0)

    입가심 천연 향신료.

    밥을 다 먹고 일어서는데 식당 점원이 나에게 슥 내민 이것.
    "네? 이것이 무엇이죠??"

    소금과 향신료, 열매 말린 것 3개 중 맘에 드는 것을 한 꼬집 집어 잘근잘근 씹으면 마치 가글을 한 것처럼 입이 상쾌해진다. 우리가 식당에서 밥 다 먹고 박하사탕 하나씩 집어먹듯이 여기서는 천연 향신료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너무 신기해서 한 컷 찍어보았다.
    정말 꼭꼭 씹다 보면 입안에 텁텁함이 싸악- 사라진다.

    네팔에 구릉 족이 자주 즐긴다는 도넛과 열매 장아찌. 장아찌는 깜짝 놀랄 정도로 시지만 기름진 도넛과 잘 어울린다. 쉬지 않고 리필해주셨다.^-^;;
    카펄-우리 나라 앵두와 거의 비슷한 맛이지만 씨가 더 크다. 산을 오르내리며 심심푸리로 베어 물고 '투-투-' 씨앗을 뱄던 기억
    길을 걷다(=하이킹) 만난 분이 직접 자신의 밭에서 캐오신 당근과 무. 그날 저녁 식탁에 예쁘게 썰려 올라왔다. 
    마을 회관에 마련된 우리의 잠자리

    수바라뜨리~!(굿나잇)

    고르카 산지에서 우리가 이틀 묶었던 숙소이다. 저 침대는 나무판 그 자체였다. 종종 캠핑을 즐겨 하는데 오랜만에 캠핑장 데크 위에서 자는 기분을 느꼈다. 다음날 일어나면 꼬리뼈와 척추가 마비되는...ㅋㅋㅋ

    마을을 방문한 감사의 의미로 받은 꽃 목걸이

    처음 마을을 방문해서 받은 꽃목걸이(여기저기 다니다가 사진을 찍어 조금 시들었다ㅠ)
    꽃잎을 한 장, 한 장씩 엮어서 긴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한명씩 걸어주셨는데 정말 너무나 감동이었다. 이렇게 정성 가득한 선물이 또 있단 말인가! 너무 금방 시들어버리는 것이 아까워 눈물이 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인터뷰 영상 촬영 후 잠시 시간이 나 마을 한 주민분 집에 둘러앉아 차를 마실 때였다. 고춧가루와 설탕 조금을 넣고 버부린 카펄과, 달달한 짜이 한 잔을 하며 쉬는 시간. 

    금요일이라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신기한 물건을 들고 있는 나를 둘러싸고 앉아 구경하길래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다. 개구진 자신의 표정을 담은 사진들을 보며 낄낄 웃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흐뭇해하며 차를 마시는 어른들.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 속 순간의 여유로움은 정말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다.  

      마을을 떠나갈때 받은 굿바이 꽃. 세 개 모두 생화다

    고르카 마을을 떠날 때 받은 꽃 선물 또한 너무 감동적이었다. 보자기 가득 꽃을 꺾어 한 송이씩 전해주며 감사의 인사를 하시는 정말 마음이 촉촉하니 너무 감사했다. 이렇게 환대를 받고 돌아가니 마음이 이상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따져보던 사업의 당위성과 실제 내가 그 속으로 가 그들의 고민과 열정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또 배분처와 수혜자라는 딱딱한 단어보다 공동체와 상생이라는 가치가 가슴 깊게 세겨졌다.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의 행복이 또 얼마나 가치있는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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