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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독서만큼 섹시한 일도 없죠
    서평 2019. 9. 1. 22:54

    서로 호감 있는 남녀가 마주앉아 식사를 하며 서로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남자: 무슨 일 하세요?
    여자: 출판사에서 리더 일을 해요.
    남자: 말도 안 돼! 돈 받고 책 읽는 거예요?
    여자: 네, 그거예요. 원고를 읽는 게 직업이죠.
    남자: 정말 멋지네요! 이거랑 비슷하잖아요. '무슨 일을 하세요?' '숨 쉬는 일을 해요. 돈 받고 숨을 쉽니다.' 

    숨을 쉬듯 일상적인 독서를 '업'으로 하는 상대방에게 부러움이 섞인 농담을 던지며 남자는 대화를 이어간다. 일이 아닌 보통 때 독서를 하면 어떤 기분이 드냐며 평소와 같이 즐길 수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 중. 독서만큼 섹시한 것도 없지. 

    가끔 삶이 퍽퍽해질 때마다 꺼내보는 영화 <어바운 타임>. 시간과 삶, 그리고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아름답게 교정해주는 영화지만 나는 매번 이 장면이 참 신선하게 느껴지곤 한다. 매춘부를 예로 들면서 독서를 섹스처럼 삶의 일상적인 즐거움으로 표현한 것, 책을 읽는 일이 숨을 쉬면서 돈을 번다고 할 만큼 당연한 행위로 간주하는 이 대목이 말이다. 평소 주위에 책 한 장 넘기기 어려워하는 많은 사람들과 독서를 고상한 취미쯤으로 여기는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대사였다. 잠잘 시간이, 예능 하나 챙겨볼 시간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여간 어색한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영화 속 시간을 마음껏 되돌릴 수 있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그 많은 시간을 책을 읽고 또 읽는데 쓴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따름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지적인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왔다. 친구들이 춤 잘 추는 아이돌을 좋아할 때 나는 똑똑하고 유식한 이미지의 타블로와 성시경을 이상형으로 내세우고는 했다. 그만큼이나 나도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이 크다. 나는 독서를 그렇게 이용한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 현명해지기 위해서. 그래서 그런지 왠지 소설은 뒷전이다. 비즈니스, 인지심리학, 복잡계 등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분야 외에도 과학,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아직 많은 양의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먼저 파야 할 분야가 분명한 것 같다. 나에게 독서는 교과서이고 선생님이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2기 독서 모임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룹원들에게 물었다. "왜 독서를 하시나요? 왜 참여하시게 되셨나요?" 그냥 고상한 취미가 될 수도 있고, 성장의 발판으로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좋은 습관을 만들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 싶었다. 3개월간 함께 같은 책을 읽고 나눌 분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나는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 독서를 할까? 나의 질문에 너무 당연한 것을 왜 묻는지 의아해하던 그룹원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 표정으로 나는 어느 정도 답을 들은 것 같았다. '지금, 왜 숨 쉬고 있는지를 묻는 건가...?'

    알베르토 망구엘

    알베르토 망구엘. 현존하는 최고의 다독가이자 소설과 논픽션 작품까지 두루두루 섭렵한 작가, 평론가, 문학 선집 편집자 등 책 덕후로 유명하다. 자신의 집에 도서관을 마련할 만큼 많은 양의 책을 읽고 지식과 교양을 음미하는 그에게 독서는 숨 쉬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학창 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서점에서 일할 당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그는 독서의 진정한 맛을 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눈이 점점 어두워져 독서가 힘들어진 보르헤스를 위해 책을 직접 읽어주면서 둘만의 독서 모임을 이어갔고 그 일이 망구엘에게 큰 문학적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의 책 <독서의 역사>에서 인류가 써 내려온 독서가들의 모습과 다양한 독서법을 소개해주었다. 문자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 지식, 종교와 삶의 기록, 노동요와 같은 사는 낙이 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얼굴로 우리 존재해왔다. 어떤 형태로든 삶의 지혜를 얻고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수단인 독서는 우리에게 친구, 선생, 엄마, 나 자신으로써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독서만큼 섹시한 일도 드물다. 책 한 권으로 그 방대한 지식과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니 얼마나 짜릿한가? 아무리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책 속 세계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그 눈동자는 호기심과 생기가 가득하다. 독서에 빠져있는 두 눈과 책장을 넘기는 손목은 가끔 진짜로 섹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물론 외ㅁ...읍읍) 진상이 많은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독서 중인 사람은 왠지 지적인 모습에 괜스레 맘이 놓이기도 한다. 

    걱정 섞인 바람이 있다면, 부디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되더라도 계속해 섹시한 독서를 즐기는 것이다. 노안이 빨리 와 10분 이상 책을 보면 어지러워하는 우리 엄마를 보면서 나도 괜스레 걱정된다. 코끝에 안경을 걸쳐 쓰고 소파에 기대어 우아하게 책을 읽는 섹시한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말이다. 독서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결코 아니며 차별의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이나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도 그러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쉽게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려운 분들도 많다. 아니면 아이를 돌보거나 삶에 치여 책을 들여다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 세계 문맹률이 아직도 25% 이상인 지금, 어찌 보면 자유롭게 책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웬만한 도시에는 작더라도 도서관 하나씩은 자리 잡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다. (뭐든 마음먹기가 제일 힘들지만.)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라면 하루 출퇴근 시간 2~30분, 잠들기 전 10분, 드라마를 보던 그 시간을 섹시한 독서의 시간으로 채워보길 권한다. 소설이든, 만화든, 자기개발서든, 아주 얇은 책이라도 독서를 삶에 일부로 만드는 노력. 숨을 쉬듯, 섹스를 즐기듯 독서도 우리를 채워주고 행복하게 하니까 말이다. 그 시간이 모이고 쌓여  삶의 지혜가 되고 즐거움이 되어 여러분을 섹시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어바웃 타임. 일상 속 사소한 즐거움으로 행복을 채우는 사람들을 담은 마지막 엔딩 장면들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 뿐이다."
    - 어바웃 타임 중에서-

     

     

    독서의 역사

    “독서를 다룬 책 중 가장 빼어난 이야기”언어의 파수꾼이자 책의 수호자,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 불리는 알베르토 망구엘그를 움베르토 에코 이래로 문학계 최고 지성의 반열에 오르게 한 기념비적인 역작!이 책은 문자의 시작에서부터 글 읽기, 독서 방법의 변화, 책의 형태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독서행위와 관...

    www.yes24.com

    이 글은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2기에 참여해 
    알베르토 망구엘 저 <독서의 역사>를 읽고 쓴 9번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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