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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 누가 세 줄 요약 좀서평 2019. 9. 1. 00:11
"아 누가 세 줄 요약 좀"
인터넷에서 간혹 긴 글이 올라오면 댓글로 달리는 말이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를 돌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긴 글을 읽을 시간이 없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재미있는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모든 정보를 이해하고 소화하기엔 우린 시간이 모자라다. 화면이 아래에서 위로 넘어가는 찰나의 시간에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세 줄 요약이 핵심이다. 요즘은 글이 길면 망한다.
'좋은 글인 것 같은데 너무 길어서 못 읽겠어요. 누가 요약 좀.'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세 줄짜리 짧은 글은 아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끝까지 읽어주길 바라며... (마지막에 3줄 요약해놓음)
컴퓨터를 하면서도 핸드폰을 하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화면을 넘긴다. 타임라인에 펼쳐진 수많은 정보을 계속 넘기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를 찾기 바쁘다. 마침내 흥미가 생기는 글을 찾으면 눈을 지그재그나 F자로 빠르게 굴리며 요점을 찾기 위해 '단어 스팟'을 찾는다. 재빨리 글을 훑어 맥락부터 파악한 다음 맨 끝에 결론으로 돌진했다가, 가끔 세부 내용을 보거나 뒤로가기를 누른다. 재미없는 글을 찬찬히 시간들여 읽을 이유가 무엇인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나오는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가 쌓여있는데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점점 긴 글을 읽기가 힘들어진다. 안 읽다 보니 이제 못 읽게 된 것일까? 꼭 읽어야 하는 글도 본문 전체를 꼭꼭 씹지 못하고 눈알만 굴러간다. 일을 하던, 퇴근 후 책을 읽던 온종일 무언가를 읽고 쓰는 나도 비슷한 패턴으로 고충을 겪는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어도 집중이 쉽지 않은 글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명저'라며 극찬을 하던 책을 읽으면서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거나, 별다른 감흥이 없을 때 정말 당혹스럽다. 아니 도대체 하고싶은 말이 뭔지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읽다가 다시 앞장을 들쳐 다시 읽어야 하거나, 눈은 읽으면서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할때가 많다. 집중하며 읽을 때조차 뜻을 이해하지 못해 손가락으로 한 단어씩 짚어가며 곱씹어보기도 한다. '도대체 왜 좋다는 거지?'
처음에는 저자가 글을 못썼거나 번역이 이상해서라고 핑계를 댔었는데 요즘 돌이켜보면 내 주의력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나의 모국어인 한글을 읽는데도 '내가 지능이 떨어지나?' 싶을 정도로 번역이 안될 때가 많아지는 느낌이다. 심각한 건 내가 주의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한동안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책 <다시, 책으로>는 디지털 읽기에 길들여진 나와 같은 독자들을 걱정한다. 무의식적으로 접속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얕고 빠르게 건성으로 읽는 독자들이 많아지면서 인지장애를 초래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직 명확한 연구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순간접속의 시대 사람들이 점점 읽었을때 주위력과 함께 비판적 사고, 공감능력 등이 떨어지는 결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글에 함축되어있는 의미와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긴 글을 읽는 것 조차 견디지 못하는 디지털 문화가 결국은 제대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조차 갉아먹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를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없이 빠르게 흡수하고 그대로 전파하고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깊이 읽기 기술은 주의력과 읽은 내용을 기억하는 능력을 점검하고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법을 알려준다. 종이책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글을 읽을 때 글 전체를 음미하며 배경지식을 쌓고 유추와 추론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 걱정스러운 독자 중 한 명이다. 올해 계속 책을 읽고는 있지만, 매번 집중해서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주 주어진 책을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과 빠르게 다음 장을 넘기려는 조급증은 디지털 미디어에서 읽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려는 '세 줄 요약'법에 그쳤고 책 내용에 빠져들지 못한체 표피만 맴돌았다. 이쯤 되면 매리언 울프가 걱정하는 것이 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빠르게 읽고 요점만 찾으며 집중하지 못하는 읽는 습관은 종이책에서도 가능하니까 말이다.
최근 동료와 함께한 점심시간에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전자책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이다. 동료는 책의 질감, 냄새, 무게, 저자가 구성한 글의 순서, 문장 하나하나가 더해져 한 권의 책이 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요소가 제외된 전자책은 책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때 나는 독자가 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것을 얻었느냐가 중요하지 나머지는 어찌되었건 독자 맘에 들면 상관없다고 말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대답해보자면 어떤 수단으로 글을 접했냐보다 독자가 어떤 태도로 읽었느냐에 따라 책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답했을 것이다. 주의력을 가지고 한 단어, 한 문장, 한 단락에 스며들어 그 의미와 형식, 그리고 그 느낌에 다가설 수 있다면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깊이 있는 독자가 된 것 아닐까.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가능하면 빠르게, 필요하면 느리게 읽는 것.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빠르게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익히면서도 이해해야 할 생각이나 음미해야 할 아름다움과 질문거리들을 지나치지 않는 것. 디지털과 종이 사이를 오가며 현명하게 글을 읽는다면 둘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지 않을까? 빠르고 복잡한 세상에서 느리고 여유로운 사색만 찾는 것도, 편리와 효율만 따지는 것도 편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가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했지만, '생각'이라는 것이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온전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할 일이 많다. 맞는 생각인지 자기검열도 해야 하고, 생각에 기반이 되는 지식도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이란 것을 하기 위한 집중력도 필요하다. 한 문장 실천하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사고를 조직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깊이 읽기에서 나오는 비판적 사고와 비유, 주의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입력되는 정보가 가짜 뉴스인지 분별할 수 있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법 유추와 추론 인지적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생각할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글을 쓰던, 문제를 해결할 것 아닌가 말이다.내가 무의식중에 빠르게 소비하는 콘텐츠는 누군가는 주의를 집중해 정성껏 자신의 생각을 녹여내 만든 콘텐츠들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내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면 나는 수동적인 소비자만 될 것이므로. 근질거리는 엉덩이를 붙여가며 모아지지 않는 집중을 온 힘을 다해 다잡아 내 생각을 정리해본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정말 수십번 주의력을 흐트러트리며 페.유.인을 끊임없이 돌고 돌았다. 그러면서도 능동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이를 악 물고 오늘도 버텨보는 것이다. 다음번 글에는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이 글의 세 줄 요약
1. 디지털 읽기(빠르게 요점 파악)는 수많은 정보로 주의력을 떨어트리고 사고력을 떨어트린다.
3. 깊고 느리게 읽기(특히 종이책)는 주의력 향상, 유추, 추론, 비판적 사고, 배경지식 쌓기에 탁월하다.
3. 인터넷만 하지 말고 책 좀 읽자!이 글은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2기에 참여해
매리언 울프 저 <다시, 책으로>를 읽고 쓴 8번째 서평입니다.'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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