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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서평 2019. 7. 27. 09:36

    "아 진짜 짜증나!!

    일이 잘 안 풀릴때 우린 너무 쉽게 짜증이란 단어를 듣곤 하지만 나는 그 단어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사실 ㅉㅈ이란 단어는 우리 집에서 금지어가 된지 오래인데, 저 단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면서 기분까지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ㅉㅈ난다”는 표현은 참 유용하다. 안 좋은 상황에서는 어떤 감정도 이 말로 모두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가 딴지를 걸어도,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도, 날씨가 덥고 습해도 모두 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 안에는 불쾌함, 당혹스러움, 찝찝함, 불안함이 들어있다. 이런 다양한 감정을 ㅉㅈ이라는 신경질적인 단어 하나로 퉁쳐버리면 나머지 단어들은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사랑, 짜증, 실망, 행복, 즐거움, 서운함…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감정은 대충만 헤아려도 손가락 열 개가 모자라다. 또 대부분은 감정 하나보다 복합적으로 섞여서 느낀다. 즐거우면서도 불안하거나, 사랑하지만 싫어하거나 하는 상황 말이다. 

    “I hate you, but I love you.
     I can’t stop thinking of you~
    It’s true, I’m stuck on you”
    - Stacie orrico ‘stuck’ 가사 중 -
    (중고등학교때 많이 부르던 추억의 가사)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언어는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정의하기 때문에 감정에 알맞은 언어를 정해주는 건 내 상태를 정의하는데 꼭 필요하다. 그러니까 ㅉㅈ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성의가 없는 말인가? 뭉뚱그러져 있는 묘사는 그 상황에서 뭐가 어떻게 맘에 안 드는지 알 수가 없다. 언어로 잘 정제된 감정을 잘 파악하면 그 속에 숨어있는 욕구와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건 나의 감정을 표현할 때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때도 큰 힘이 된다.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다양한 감정들이 언어로 적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몰래 홈쳐보는 사랑의 감정도 다음처럼 열렬하게 묘사해놓는다.

     “당신은 존재하기 위해서는 춤을 추며 위로 솟구쳐야만 하는 불꽃을 닮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늘씬한 몸매로 당신은 경쾌하고, 디오니소스적이고, 도취한 듯한 야만적인 불꽃, 그 불꽃에 둘러싸여 있더군요.
    당신을 생각하며 나는 당신의 알몸 위에 불꽃으로 엮은 외투를 던졌습니다.” 
    - <정체성> 밀란 쿤데라 -

    소설 <정체성>의 저자 밀란 쿤데라

    '당신을 사랑해요'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고 화려하게 표현하면 우리는 문장 속 사이사이 상상을 껴 넣어 감정을 이입한다. 극 중 누군가에게라도 빙의하여 그들의 감정을 느끼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나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드라마던, 영화던, 소설이던 이야기에 빠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공감능력을 키우려면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들 하나보다.

    돈이 없어 추억이 깃든 소중한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게 되는 '라스콜리니코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죄와 벌>은 아쉬운 처지에도 자신과 그의 물건을 업신여기는 전당포 노파에게 분노를 느껴 벌어지는 비극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주인공과 함께 무기력과 모멸감을 느낀다. 분노의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 노파를 살해하는 라스콜리니코를 보며 우리는 함께 전전긍긍하며 슬퍼할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타인에게 외면받았거나 비슷한 관경을 봤을 때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아 맞아. 나도 저 기분 뭔지 알것 같아.’

    영화 ‘죄와 벌’(1969)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 역할을 맡은 배우 게오르기 타라토르킨

    하지만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분노를 느낀다고 전당포 주인을 살해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그가 느낀 분노의 감정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 감정으로 저지른 행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누군가는 분노를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 구조에 느꼈을 수 있고 누군가는 다시 발길을 돌려 추억을 팔지 않기로 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을 느꼈을 수 있다. 감정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어서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의 맥락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른 행동을 한다.

    “나는 오직 당신을 위해 참는 거예요. 당신을 위해 신식 여성이 될 거예요.”
    - 펄벅 <동풍 서풍> 중 -

    이제는 사라진 중국 전통 '전족'. 소설 <동풍 서풍>의 궤이란은 남편의 사랑을 얻기위해 전족을 벗어던지고 물리적 고통에 괴로워한다.

    소설 <동풍 서풍>에서는 '전족'을 벗어던지는 신여성을 동경하는 남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지켜온 전통을 과감하게 버리는 여성 '궤이란'이 묘사된다. 오직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저 남편이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평생을 뼈가 부러지고 아물며 꽁꽁 싸매고있던 발을 푸는 순간 겪을 고통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평생 믿고 따라온 자신의 신념을 기꺼이 버리고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궤이란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내 소신이나 가치관을 바꿀 마음이 추호도 없다. 만약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고유의 모습을 버려야 한다면, 그래야 그 사랑이 유지된다면 그걸 사랑으로 봐야 할까? 그건 자존감의 문제다. 차라리 사랑을 잃은 아픔을 가슴 한곳에 묻고 평생 살지언정 사랑을 얻기 위해 나를 부정하고 괴롭히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는 자신의 모습을 포기할 때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민감하다. 지켜야 하는 것이 아무리 위대한 가치라도 내가 꿈꾸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가령 가족의 평화를 일해 일을 그만둔다든지, 여성에서 강요되는 사회적 역할때문에 내 삶의 패턴을 바꾼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엄마처럼. 이것이 내가 고전 소설에 1도 몰입을 못하는 이유다.

    "느낌은 충족되었거나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알려주는 신호이다."
    - 마셜 로젠버그 <비폭력대화> -

    강신주 작가의 <감정수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감정들은 모두 성역할이 분명하다. 여성들의 가치는 능력보다는 외모로 평가받고, 대부분의 인물들이 상대방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모두가 돈과 명예가 최고의 가치인 양 쫓거나 과거나 미래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나에게 고전 소설의 주인공에 감정을 대입하는 것은 곤욕이다. 아픔이 있어도 당차게 앞길을 헤쳐나가 승리하는 사람 하나 없이, 하나같이 감정에 헤어 나오지 못해 죽고, 헤어지고, 부서져버리는 주인공들로 48개의 감정들을 채워져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여자와는 다르게 자신의 부에 매료되지 않는 여자를 '특별한' 여성으로 묘사하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현실을 잊고 화려하고 사랑받았던 젋은 시절을 동경하며 환상에 빠진 노파를 묘사한 <아우라>
    더 큰 부를 가진 남자가 누군지 저울질하는 데이지, 자신의 부가 더 안전하다고 데이지를 설득하는 두 남자 <위대한 게츠비>

    한때의 기쁨을 영속시키려는 서글픈 시도. 카를로스 푸엔터스 <아우라>

    인간이 나약한 이유 중에 하나는 감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 때문에 후회할 결정을 하고, 진실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하고, 도전하며 사랑할 수 있다. 감정을 인간의 절대적 가치가 아닌 하나의 신호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감정을 우리의 상태를 알아내는 신호로 부정적인 감정은 무언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긍정적인 감정은 일이 순탄할 때 느끼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떤 감정은 좋고 어떤 감정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내 삶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도움을 주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흘러간다. 금방 화가 나다가도 찬찬히 상황을 복기하면 화가 누그러진다. 어제는 분명히 서운했는데 오늘 다시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감정을 누르거나 극복할 거 없이 인정하고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가 어떤 자극에 이런 감정을 느낄까?', '아 내가 특히 이런 감정에 민감하구나' 과거 경험을 돌아보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감정 하나가 아니라 상황과 나를 이해하고 상황을  모두 볼 수 있는 눈을 키운다면.  내가 왜 싫고, 좋고 힘들지, 하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자기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전체를 조망하며 감정이 휘둘리지 않는 것이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 감정을 유발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큰 강점이다. 색을 표현하는 언어를 많이 알아야 더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하듯, 감정을 표현하는 수많은 언어를 알면 우리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 괴롭고 갑갑하다 느낀다면 (당장 사표 쓸 것이 아니라) 지금 상태를 조망해보면 좋겠다. '뭔가가 잘못되었구나... 그게 뭘까?' 괴롭고 갑갑한 기분이 부당한 상사의 요구에서 온 것인지, 옆 동료와 잘 안 맞아서인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인지 원인을 찾는 것이다.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찰하면서 한 발자국 물러나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게 내 감정에 대해 나만의 정의를 내리면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원인을 알면 해결책도 쉽게 찾을 수 있겠지? 흐르는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조금은 더 긍정적인 단어들이 많이 보이지 않을까?

     

     

     

    강신주의 감정수업

    ‘자긍심’에서부터 ‘비루함’까지, 스피노자와 함께 떠나는 내면의 여행!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의 감정수업』.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이성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철학 전통에서 ‘감정의 윤리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감정이 중요한 키워드임을 주지시켰다.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자기감정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강신주는 이 책에서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분류한 인간의 48개의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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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2기에 참여해
    4번째로 작성한 강신주 저자의 <강신주의 감정수업>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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