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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놓고 싶지는 않지만 캠핑은 가고 싶어
    서평 2019. 7. 13. 09:03

    목도 뻐근하고 몸도 여기저기 찌뿌둥하다. 거북목 조심해야 하니 막간 짬을 내 폼롤러로 뭉친 어깨를 풀어준다.
    하늘은 맑고 날은 푸르른 이런 날에는 바닷가 앞에 텐트 치고 앉아 시원한 맥주 한잔 하면서 수평선을 바라보기 딱 좋은데...
    하늘 한번 올려다보다가 아직 다 못 채운 오늘 독서 목표량을 위해 다시 책을 잡는다.

    나는 산이든 바다든 훌쩍 떠나 즐기는 캠핑을 참 좋아한다. 고요한 산속에서 푸르른 나무들과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있다 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참 평온하다. 끝이 없이 펼쳐진 바다에서의 캠핑은 따뜻한 해변가 모래알에 발가락을 묻어놓고 맞는 시원한 바람이 일품이다. 캠핑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찾아보면 근처에 소소하게 다닐 곳이 정말 많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처음 캠핑의 맛을 알게 된 후로는 시간만 나면 캠핑 스팟을 찾아 여기저기 여행지들을 돌아다녔다. 그 맛에 빠져 결혼을 결심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작년 여수 캠핑장에서. 왼쪽에 회색에 빨간 테두리 텐트가 우리 아지트였다.

    나들이는 고사하고 외식 한번 하기 힘들던 부모님 라이프 스타일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일상에 눈뜨게 했다. 산들바람, 파란 하늘, 푸른 바다, 교외에서 열리는 작은 플리마켓까지 정말 갈 곳, 맛볼 것, 체험해볼 것이 넘친다. 주말 고속도로에 차들이 빽빽하다는 뉴스를 들으면 의아했었는데 다들 이러고 사느라 그랬구나 싶었다. 이제는 내가 그 정체 구간에서 차를 몰고 있으니 말이다. 금요일 퇴근길에 즉흥적으로 텐트 하나 차에 싣고 여수를 내려가기도 하고, 주말 꽉꽉 채워 놀다가 강원도 유명 장칼국숫집에서 일요일 저녁밥을 먹고 올라오기도 했다. 세상에 보고 경험할 것이 이렇게 많고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니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던 중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고양이를 키우게 됐고, 남편은 맡은 프로젝트가 길어져 야근이 점점 길어졌고, 나는 독서를 조금 과격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독서와 휴식을 위해 주말까지 투자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캠핑 횟수는 확 줄었다. 이제 고양이가 있으니 주말 캠핑 1박 2일을 계획해도 서둘러 돌아와야 맘이 편했다. 독서와 글쓰기, 중요한 프로젝트도 의미 있고 보람되지만 나는 마음속에 의문을 덮어두기 어려웠다. 힘들고 고된 인내의 순간들로 당장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자원은 한정적이고 시간은 유한한데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길을 가야 나중에 후회 없이 더 뿌듯할까. 내가 이런 라이프 스타일로 사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좋은 삶’일까?
    ‘어떻게 살아야 될까?’

    <헤라클레스의 선택>, 안니발레 카라치 - 탁월한 삶을 권장하는 여인은 정숙한 옷을, 쾌락적 삶을 추구하는 여인의 옷은 시스루다.

    "자신에게 제시된 두 가지 삶을 놓고 고민하는 젊은 헤라클레스를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두 여인이 등장하는데 한 여인은 고통스럽고 험난하지만 탁월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헤라클레스에게 조언하고,
    다른 여인은 즐겁고 신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80명의 성인에게 여행같이 즐거운 행위에서 느끼는 '쾌락적 행복'과 독서와 자기개발에서 오는 '의미적 행복'을 측정한 후 이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 것이다. 연구자들은 참여자에게 일정한 질문으로 참여자들이 추구하는 행복 형태를 측정한 후 이들의 혈액을 채취해 항바이러스 유전자 발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의미적 행복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이 몸의 역경을 이겨내는 건강한 유전자 활동과 관련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의미적 행복과 쾌락적 행복은 서로 강하게 연결돼있어 의미적 행복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쾌락적 행복도 더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행복할수록 캠핑과 여행의 즐거움을 더 강하게 느끼고 삶에 만족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위 연구 결과는 고민하고 있던 내 어깨가 쫙 펴주며 힘을 주었다. 

    위 연구를 지휘한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또 다른 연구로 나를 안심시켰다. 20대에서 79대에 걸쳐 총 508명의 성인들의 ‘좋은 삶’에 대한 신념을 측정한 결과 단순히 ‘즐거워야 행복하고, 고통은 피하는 것!’이라고 믿을수록 스스로 삶에서 안녕감(well-being)을 느끼는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삶에 의미를 느끼며 ‘자기를 성장시키고 타인의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 큰 만족감과 긍정 정서도 강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단순한 즐거움만 쫓는 사람보다 자신의 삶에 더 만족하고, 덜 좌절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았다. 쾌락과 의미는 굿 라이프의 양대 산맥이며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살아감에 있어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깊게 이해한 바 있다. 책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본인과 죽어가는 수많은 동료들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생사가 달라지는 것을 몸소 경험하고 책에 기술하였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할 것이 없던 그들의 처참한 생활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의미와 고통에 의미를 가진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다. 죽음이 턱 끝까지 몰려온 상황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으로 노력했다.

    나치 강제수용소 수용자 모습. 빅터 프랭클은 심리학자로 이 끔찍한 곳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의사로서 내 동료들을 돕다가 죽는 것이 그 전처럼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로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보다 확실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

    다만 내가 그동안 착각해왔던 사실은 ‘의미’라는 것이 빅터 프랭클처럼 극단의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심오한 것도, 나라를 구하고 빈곤을 없애는 거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의미의 원천은 ‘자기다움’에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과 얼마나 부합하는가가 중요하다. 의미에는 삶에 대한 목적의식, 소명과 자기희생과 같은 큰 의미도 있지만,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의미도 존재한다. 아이에게 매 끼니를 정성껏 챙겨주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고, 올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의미는 소중하다. 작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 있다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볍고 경쾌한 의미 '소확의'도 있는 것이다. 의미의 일상성을 인식해야 의미 있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삶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명확하고, 동시에 그 기준이 건강하면 살아가는데 거침이 없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목표의 크기가 아니라 목표의 개인적 의미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일지라도 개인에게 의미가 없다면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
    - 책 <굿 라이프> 중 -

    사실 나는 지금 텐트를 싣고 강원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운전을 해주는 짝꿍에게 '돌아가는 길에는 내가 운전하겠노라' 양해를 구하고서 말이다. 그동안의 혼자 답을 찾던 고민이 책 한 권으로 간단하게 해결되고 나니 일상이 참 상쾌해졌다. 잠도 부족하고 머리에 쥐도 나지만 성장통으로 생각하니 뿌듯하다. 나는 얼마나 더 클까? 고통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고 성장을 위해 행복한 순간들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의 즐거움들을 모두 버리지 않아도 된다니 왠지 더 신나게 읽고 쓰는 것 같다. 즐거움과 의미의 정서적 균형을 이루며 의미 있는 일에 열중하면서도 게임이나 여행을 즐기며 삶의 순간순간을 음미하는 삶이 '좋은 삶'일 것이다.

    2010년도에 개봉한 내가 너무 사랑하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주인공은 8년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재산을 털어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세 나라를 1년간 여행한다. 이탈리아에서 맛있는 음식들과 순간을 음미하며 즐기는 방법, 인도에서는 영적인 성숙과 마음의 평화를, 마지막 발리에서는 자유롭게 사랑하며 삶의 밸런스를 맞춰간다. 나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에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그 과정도 참 좋았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이 더욱 인상 깊다.

    이탈리아에서 젤라또를 즐기고 있는 '리즈'. 영화<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

    진정한 사랑을 만난 주인공은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 자신이 그동안 힘들게 맞춰온 밸런스를 깨야 하는 상황에서 갈등한다. 결국 사랑을 포기하려 하지만 그 순간 남자 주인공이 해답을 준다.
    "우리는 살아가며 균형을 잃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더 큰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거야.'
    지금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일도 좋지만, 그것을 깨고 더 나아감으로 더욱 균형잡힌 삶을 살수 있다고 말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믿고 사랑할 수 있게된 주인공 '리즈'는 더 큰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낸다.

    이미 맞혀있던 균형 잡힌 나의 일상에 독서와 자기 성장으로 새롭게 채운 변화는 그동안의 균형을 모두 깨버렸다. 하지만 이런 균열은 더 큰 균형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고통을 주지만, 행복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다. 즐거움과 의미의 균형을 맞춰가며 좋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 나처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즐겁게 찾아나가길 바란다.

     

     

    굿 라이프

    행복과 인생에 관한 통찰로 가득한 『굿 라이프』. 심리...

    www.kyobobook.co.kr

     

    이 글은 대교에서 후원하고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2기에 참여해
    3번째로 작성한 최인철 저자의 <굿 라이프>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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