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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우리가 남이라 생각해서 미안.서평 2019. 8. 12. 13:30
같은 반, 같은 과, 같은 동아리로 한 곳에 묶여있던 시절에는 친구 사귀는 게 어렵지 않았다. 가볍게 말 붙이기도 좋고, 같은 생활권에 공통점도 많아서 쉽게 가까워졌다. 사회에 나오고 나서는 계산할 것도 많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새로운 친구 사귀는 게 더욱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 사귀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새삼 내일로 느껴진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다 맞추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들을 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 김영하 <말하다> 중에서 -많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며 폭넓은 인맥과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마음도, 취향도, 공감대도 안 맞는 친구를 함께한 시간만으로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오래된 친구가 꼭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나면 우리는 관계에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느슨한 유대는 오래된 친구보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어떻게? 친구의 친구들, 그리고 쉬고 있는 휴면 인맥들이 그 답이다.
<친구의 친구> 저자 데이비드 버커스는 약한 연결의 힘을 이야기한다. 자주 연락하고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보다 잊고 지내던 옛 친구, 또는 친구의 친구 같은 약한 유대관계에서 훨씬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하고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강한 유대 관계에서는 더욱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약간만 시야를 키워 나와 다른 생활권에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는 더욱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다양한 자원을 끌어올 수 있다. 이런 새로운 자극은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은 더 많은 기회로 이어진다.
이렇게 말하면 이득이 되는 사람만 가려서 만나라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이득을 생각하고 작위적인 인맥관리가 아니다. 어떤 목적이 있든 없든 우리는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 함께 대화하면 찝찝하고 우울해지는 소모적인 관계가 아니라 다음 만남이 기대되고, 만날수록 즐거운 일이 생기는 친구가 더욱 자기개발의 중요성, 도움 되는 친구를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듯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동전 뒤집히듯 바뀐다.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는데 중요한 관계에 친구라고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다. 쓸데없이 괴로운 관계를 이어가며 우리에게 좋을 것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여행 간다면 꼭 한번 들르는 곳, 바로 무라노 섬이다. 무라노 섬의 아기자기한 풍경도 좋지만 이 곳은 유리 공예가 유명한 곳이다. 수 세기 동안 이어져온 유리 공예 장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무라노 섬은 1291년 무렵 화덕으로 인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유리 세공업자를 무라노 섬에 모여살게 되었다. 밀집된 '사일로'가 형성되면서 정보와 아이디어가 공유되면서 더욱 창의적인 기술을 만들어냈다. 클러스터가 결성되면 그 사람들과의 교류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조언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서로의 작품을 더욱 알차게 다듬는다. 훌륭한 기술력으로 베네치아는 금세 유리 제조업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무라노 섬 이야기에서 우리는 업의 성격에 따라 한 공동체가 서로에게 무지막지한 시너지 효과를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적용시켜보면 자신만이 강점을 갈고 닥을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들과 교류하고 좋은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는 나부터 괜찮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이나, 공예처럼 강한 유대로 전문적인 영역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하나의 사일로에 머무는 것은 그 공동체에나 나에게 독이 될 수 있다. 고인 것은 물이던 사람이던 좋지 않듯이 말이다. 하나의 그룹에서 정보가 묶여있지 않도록 새로은 커뮤니티와의 교류도 건강한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이는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선배들이 이직을 하며 유사한 업종으로, 또는 완전히 다른 분야더라도 계속해서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한번 OO인 이면 영원한 OO인이라고 했던가? 영리 기업으로 가신 분들은 사회 공헌 활동으로, 비슷한 곳으로 가신 분들은 컨설팅이나 연구를 함께 진행하기도 한다. 있는 곳은 달라져도 연결된 고리를 놓지 않고 교류를 하며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내가 독서모임을 힘들게 버티면서도 계속 이어나가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방향으로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것. 서로 직장이나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느슨한 관계이지만 그 안에서 유대감은 정말 환상적이다. 서로가 꾸는 꿈을 열심히 응원하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며 해결책도 찾아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선뜻 나누며, 서로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축하해주는 커뮤니티. 3개월간 함께 활동하며 단단해진 1기 멤버들이 2기 활동을 시작하며 각자 다른 그룹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하나의 멀리에서나마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같은 그룹 안에서의 활동 말고도 좀더 넓은 의미에서의 네트워킹도 이뤄지고 있다. 요즘 전혀 얼굴도 본 적 없는 페친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른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던 분들이 연결을 타고 나의 페이스북을 찾아주시거나 심지어 모임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분들도 친구가 되고 있다. 나에게 연결되고 있는 이런 느슨한 관계가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자극이 되고, 격려가 되어준다. 요즘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더욱 활발해 위에서 말한 느슨한 유대관계가 더욱 활발하게 퍼져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친구 만들기 참 쉬워진 세상이다.
맞지 않는 친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괴로워할 필요도, 새로운 친구를 만들지 못해 아쉬울 필요도 없다. 마음 맞고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귀기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내어줄 내 것이 있고, 열린 마음으로 느슨한 유대관계를 즐길 수 있다면 나이기 들어도, 생활 반경이 좁아도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큰 힘을 받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이 글은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운영하는 독성모임 '씽큐베이션' 2기에 참여해 쓴 글로
책 <친구의친구>를 읽고 2번째 쓴 6번째 서평입니다.'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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