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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우주, 우리 엄마. 나는 그 품을 떠나왔다
    서평 2019. 6. 27. 00:26

    여느 때처럼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엄마는 내 얼굴을 슥- 한번 쓰다듬고는 미소 지으며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안녕 미선아’라고 말한 뒤 조금씩, 아주 천천히 멀어졌다. 그렇게 멀어지는 엄마를 보면서 따라가지도 못하고 나는 대성통곡하며 가지 말라고 엉엉 울었다. 

    “엄마... 가지 마!”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나를 깨웠다. 꿈이었다. 한밤중에 잘 자다 말고 꺼이꺼이 숨넘어가듯 울고 있는 날 보고 깜짝 놀라서 깨운 것이었다.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지 한달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결혼으로 생에 처음 독립한 일이 나에게는 엄마를 떠나오는 과정이었나 보다. 2년 전 꾼 꿈이라 앞뒤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엄마가 나에게서 멀어지던 그 순간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작년 겨울 엄마와 단둘이 떠난 일본 여행. 잊지 못할 추억

    엄마는 나의 우주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떨어져사는 것에 익숙해진 요즘은 더 이상 엄마를 떠올리며 울먹거리지는 않게 되었지만 아직도 나에게서 엄마가 떠나간다는 건 꿈이라 해도 너무 끔찍하다.
    사실 
    결혼을 하면서 생전 처음 부모님과 떨어져 독립을 하게 된 나는 너무 신이 났다. 30여 년을 통금시간을 지켜야 했던 내가 '이제는 자유롭게 심야영화도 보고, 야시장도 갈 수 있겠구나!’ 부푼 꿈에 설레었다. 하지만 딱 한가지 내키지 않는 것이 있다면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었다. 엄마를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여느 딸들이 그러하듯 나는 같은 여자로서 동질감을 느낀다. 엄마가 결혼했을 나이가 되면서부터 여리고 순진한 한 여자가 감당했어야 했을 상황들에 공감하며 애처롭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많이 닮은 나는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 무던히도 달라지려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낯선 남자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하기 한 달 전쯤 우리 엄마의 우주,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1년 동안 엄마를 떠날 준비를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 결혼(엄마품을 떠난 일)을 외할머니의 죽음과 연결 지어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엄마에게 소중한 두 여자가 동시에 떠나버리니 얼마나 허전하고 가슴이 아팠을까. 물론 한 명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행복하지만 30여 년을 한 집에서 품고 살던 시간은 이제 끝이 난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엄마도 말해주었다.

    “엄마도 너 보내고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많이 울었어~”

    외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새벽에 홀로 주무시며 돌아가셨다. 93세 고령에 다들 호상이라고 했지만 우리 엄마와 이모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생전에 꽤 자주,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바리바리 챙겨 외할머니를 살뜰히 모셨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셨나 보다. 그 차가운 새벽, 혼자 외롭게 가시며 자식들을 얼마나 찾으셨겠냐고 참 많이도 우셨다. 하지만 정말로 외할머니가 정말로 외로우셨는지, 행복하셨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할머니가 마지막 가시는 길에 어떤 모습으로 누구와 함께하고 싶었는지 우리는 한번도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깔끔하고 자식 손 빌리는 것을 싫어하셨던 멋쟁이 우리 할머니는 어쩌면, 혼자 조용히 가시는 순간을 기다리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모님의 ‘죽음’을 입에 담은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 번쯤 모두가 모여 죽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봤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우리들이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울지 않았을까. 

    장례식장에서 대성통곡하며 우는 사람은 고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설움에 우는 거라는 말이 있다. 그의 죽음으로 함께한 내 삶을 돌아보니 서러워져 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가끔 우리는 죽어가는 이에게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을 원망하기도 한다. 외할머니 장례식장을 지키며 가족들은 외할머니와 함께한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유치원 나이에 할머니가 일을 나가야 해 이웃집에서 늦은 저녁까지 맡겨졌던 기억, 어린 동생들을 혼자 돌봐야 했던 첫째의 심정, 원하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을 가야 했던 외삼촌이 겪은 할머니와의 일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닌 한 여자, 한 사람으로서의 우리 외할머니 삶은 어떠셨을까? 삶을 마무리해가며 떠오르는 행복한 기억과 할머니가 이루었던 크고 작은 성취들은 우리들이 모여앉아 나눈 이야기와는 또 다를 것이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항상 짜증을 냈다.

    "엄마가 아직 얼마나 젊은데 벌써 그런 말을 해!"

    엄마도 점점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아 한탄하듯 한 말이었을텐데, 나는 아직 창창한 나이에 벌써 끝나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아쉽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처럼 나를 떠나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그것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는 걸 떠올려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 모두 죽어가는 중 아닌가. 하지만 죽음을 미리 떠올리고 준비한다고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한동안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없어야 한다. 나는,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우리 엄마와 아빠가 원하는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공간의 온도, 분위기, 음악 또는 침묵, 향기, 함께하는 사람들, 
    우리는 함께 그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헤어짐을 준비하는 아니라 열심히 사랑하고 성취하고 있는 우리 일상을 더욱 견고히 하고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잘 완성될 수 있도록 좋은 죽음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해줄 것이다. 이런 대화들을 꺼내기가  쉽지는 않다. 나 먼저 자기 성찰과 자기 이해로 내 삶과 죽음, 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깊이 있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메멘토 모리. 기억하라, 그대는 죽어야 할 운명임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뉴욕 타임즈 평론가가 선정한 2018년 올해의 책 푸...

    www.kyobobook.co.kr

     

    이 글은 대교가 후원하고 체인지그라운드가 운영하는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1기에 참여해 작성한 12번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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